노동부 산재사고 서류조작 묵인
문제 불거지자 뒤늦게 수사의뢰·징계 방침 밝혀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A대형건설사가 사망재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려 한 사건과 관련해 이 회사 관계자를 수사의뢰하고, 담당 공무원을 징계요구하겠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당시 A건설사는 자신의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시행사인 D사에 압력을 넣어, 도급계약서에서 A사의 이름을 빼고 하청회사인 B사를 원청회사로 바꾸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탄로나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8개월이나 지난 후 이제야 담당 직원을 징계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건설사 브랜드 사전 인지 = 지난해 12월 6일 A대형건설사가 시공 중인 경기도 수원 파장동 모 아파트 모델하우스 신축공사 현장에서 유리설치작업 중이던 근로자 박 모(42)씨가 14ｍ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재해현장 조사는 사고 다음 날인 12월 7일 10시 고용노동부 수원지청 근로감독관 최 모씨와 산업안전공단 경기남부지도원 건설안전팀 송 모 차장 등 4명이 진행했다.
근로감독관이 조사과정에서 받은 도급계약서는 아파트 공사 시행사인 D사가 B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실제 도급계약을 맺은 원청사인 A사는 계약서 어디에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노동부는 결국 하청회사인 B건설과 재하청회사인 C회사만을 추락방지조치 미비로 입건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과연 사건현장에서 근로감독관이 원청사가 바뀌었다는 것을 몰랐을까 의문이 제기된다. 당시 사고현장에서 근로감독관 등이 함께 작성한 재해조사의견서를 보면 공사현장은 A대형건설사의 아파트브랜드명을 표기한 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원청사가 A사일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모델하우스 공사라 해도 아파트 브랜드를 인지했고, 더구나 중대재해였다면 당연히 도급계약서상 원청사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장조사에 참여했던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모델하우스 공사여서 도급계약서를 꼼꼼히 따지지 않았다”고 했다.
◆ 산업안전법만 적용 = 문제는 그 후에 터졌다. 시행사인 D사가 1월 29일과 2월 1일 두차례 신문광고를 통해 ‘A대형건설사가 자신들에게 압력을 넣어 B하청회사를 원청사로 둔갑시킨 계약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파문이 일자 노동부는 A건설사 관계자를 불러 사건경위를 조사했다. A건설사 한 관계자는 “2월초 노동부를 방문해 허위계약을 맺은 사실을 설명했다”며 광고내용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는 A건설사가 도급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도급계약서 변조 행위에 대해선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A건설사를 도급사업 안전조치 위반으로만 추가 입건하는데 그쳤다. 명백한 A건설사 봐주기인 셈이다.
6개월 뒤 YTN은 ‘산재 사망사고를 낸 A대형건설사가 힘없는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하고 노동부는 이를 사실상 묵인해 준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YTN의 보도로 A대형건설사가 시행사인 D사를 상대로 ‘신문광고 등을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10일 뒤늦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를 포함해 도급계약서 위조에 관여한 A건설사 관계자를 수사기관에 의뢰하고, 담당 근로감독관과 과장은 징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건설노조 이영철 교선실장은 “대형건설사의 산재은폐를 막으려면 불공정한 원하청 문제와 함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하다”며 “근로감독관이 산재현장에서 소극적으로 활동하면 은폐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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